남편의 뉴질랜드 여행기, 시간은 없고 거리는 멀고.

서가파파는 대한민국의 여느 아빠들처럼 평범한 직장인이랍니다, 사실 여름휴가 한 번 제대로 가 본 적이 없었지요. 3일의 휴가도 붙여서 쓰기 불편하다며 나눠쓰기 일쑤였지요. 그런 남편에게 엄청난 요청을 했어요, 아이들과 함께 먼저 뉴질랜드에 가 있을테니 추석 연휴에 연차를 앞뒤로 조금 붙여서 뉴질랜드로 오라고! 남편은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고 결국 추석 8개월 전에 티켓팅을 했답니다. 그러다가 중간에 갑자기 항공 스케줄이 취소됐다는 연락이 와서 스케줄을 변경하기도 했고, 회사에 또 바쁜 일들이 마구 쏟아져서 일을 제쳐두고 올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지요. 게다가 태풍까지 올라와서 항공편 결항이 우려되는 상황까지.. 돌아보니 남편이 뉴질랜드로 오기까지 참 많은 일들이 있었어요. 

↗태풍 링링의 영향으로 항공편 시간이 조금 지연되긴 했지만 그래도 별탈없이 크라이스트처치까지 안전하게 잘 도착한 우리 남편, 어찌나 반가웠는지 모른답니다. "안녕, 여보!" 오전 9시에 비행기에서 내린 남편이 집에 도착하자마자 한 이야기, "왜 당신이 치치에 도착하자마자 라면을 끓여먹었는지 알 것 같아!" 아마 많은 한국인들이 그렇겠죠? 

↗3시간밖에 차이나지 않지만 그래도 시차는 시차인지 남편은 오전 내내 잠을 잤답니다. 비행기에서도 푹 잤다고는 했지만 비행기에서 잔 잠이 그리 단잠은 아닌지라 몸이 많이 피곤한 듯 했어요. 한국에서도 바쁜 회사일로 야근을 밥 먹듯 하다 왔으니 더 그렇겠죠. 대한민국의 모든 아빠들, 화이팅입니다! 잠깐의 꿀잠을 자고 난 남편은 유치원에서 돌아온 아이들과 함께 집 근처에 있는 하버드공원(Harvard Park)으로 나갔답니다. 바람이 조금 불긴 했지만 볕이 좋아 따스한 날인지라 아이들은 신이 났어요, 폭신폭신 잔디밭을 마음껏 뛰어다니고, 뒹굴고.. 오랜만에 함께 아빠와 뛰어다니며 놀 수 있어 더 행복한 우리 아이들이었지요.

↗남편도 오고 좋은 자리에 빠질 수 없는 고기! 풀 먹고 자란 뉴질랜드 청정우도, 기름없는 뉴질랜드 방목 돼지도 맛보라며 제부가 굽고 또 굽고 그랬답니다. 아이들도, 어른들도 모두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모두가 좋아하는 돼지 등갈비도 먹고!

↗피존베이(Pigeon Bay)에 들렀어요, 남편은 썰물 때를 기대했지만 하필 밀물 때라 바닷물이 가득 들어와 있었답니다. 

↗아카로아 역시 만조, 햇살이 부서지는 바닷물 위로 장난감같은 요트가 동동동 떠 있었어요. 프랑스의 향기가 짙게 배인 이 곳 아카로아는 아름답기로 유명하지요, 서가맘은 남편에게 동화같이 아름다운 이 마을을 꼭 보여주고 싶었답니다.

↗아카로아에서 빼 놓을 수 없는 피시앤칩스, 아카로아의 피시앤칩스는 냉동된 생선을 쓰지 않아 비린내가 전혀 없고 신선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지요. 튀기면 신발도 맛있다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재료의 신선도는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사람들이 왜 아카로아까지 찾아가 피시앤칩스를 먹는지 알 것만 같았어요. 

↗아카로아와의 짧은 만남을 뒤로 하고 급히 유치원으로 가서 아이들을 하원시켰어요. 햇살이 너무도 따스하고 좋은 날이어서 캐시미어힐에 있는 빅토리아파크(Victoria Park)로 향했답니다. 높은 곳이니만큼 저만치 아래로 보이는 치치도 바라보고 아이들과 함께 신나게 미끄럼틀도 타고 그네도 타고 지는 해 아래 남은 햇살이 아깝지 않을 만큼 열심히 뛰어놀았답니다. 바람이 꽤 불어오는 날이었지만 아이들의 넘쳐나는 에너지를 당할 순 없었지요. 아이들에게도, 우리에게도 매일의 일상이 이토록 푸르고 해맑은 웃음이 넘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저녁에는 제부가 중국음식점에서 사 온 음식들을 함께 나누었답니다. 캡틴밴스라고 불리는 짭쪼름한 양념에 볶은 닭고기와 밀가루에 달걀을 넣어 면을 뽑은 볶음국수을 먹었는데 치킨누들은 아이들도 잘 먹더라고요. 밥과 함께 먹으면서도 볶은 닭고기가 너무 짜다는 생각을 했는데 동생부부 말로는 원래 그렇지 않았다네요, 속상하지만 오늘 닭고기 간이 아무래도 잘못된 것 같다고 했답니다. 그래도 맛있게 먹었으니 감사한 걸로! 

↗목요일 아침, 남편은 핸드폰과 지갑만을 들고 자전거를 타고 치치 시내로 나홀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헬멧을 쓰고 조끼를 입고는 씩- 웃으며 "청소부 패션인데!" 합니다, 뉴질랜드에서는 남녀노소 누구나 안전조끼를 입고 있으니 사실 이상할 것도 없는데 고정관념인 거죠. 제부가 다니고 있는 아라(Ara)대학에 들렀다가 치치 시내를 둘러보고 왔다고 했어요. 혼자 어느 까페에 들러 롱블랙을 시켜 마시기도 하고, 누군가의 테니스 경기를 관전하기도 하고, 머리가 희끗희끗한 할아버지와 짧은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네요. 사실 남편이 오면 테니스도, 축구도 꼭 한 게임 하고 갈 수 있기를 내심 바랐는데 그게 그리 쉽지는 않았답니다. 축구는 이미 시즌이 끝나서 사람들이 모이질 않았고, 테니스는 어떻게 연결을 해야 할지 알지 못했던 탓이죠.  

↗자전거를 타고 나들이를 다녀 온 남편의 표정은 너무 너무 밝았답니다, 역시나 운동 좋아하고 몸 움직이는 걸 좋아하는 우리 신랑입니다.

↗아라(Ara) 바로 옆에 있는 BACON BROS BURGERS에 가서 샌드위치를 주문했답니다. 수제햄버거를 먹고 싶다는 남편의 의견을 존중해 점심은 햄버거는 아니지만 치치에서 맛집으로 알려진 이 곳에서 수제샌드위치를 먹기로 했지요. 남편과 저는 비프, 동생은 베이컨, 제부와 친정엄마는 치킨으로 결정. 반 잘라서 나눠먹어보니 저는 비프가 훨씬 낫더라고요. 베이컨브로에서 직접 구운 빵으로 만드는 샌드위치인데 남편은 빵이 부드럽지 않고 살짝 바게뜨처럼 딱딱해서 별로라더군요, 그러나 제 입맛에는 꽤 좋았답니다. 어디까지나 개인 취향!  

↗맛있게 점심을 먹고는 평소보다 조금 일찍 아이들을 하원시킨 뒤 고들리 헤드 파크(Godley Head Park)에 다녀왔답니다. 파도가 밀려오는 해변가를 아빠 손 잡고 총총총 걸어가는 우리 딸, 아빠와의 추억을 하나 하나 쌓아가며 잘 자라나길 바라며 뒷 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네요.

↗막내는 해변에서 이모랑 할머니랑 놀고, 큰 애들은 엄마, 아빠, 이모부와 함께 트래킹을 했답니다. 덕분에 예쁜 양들도 만났지만, 양들 때문에 발 밑을 매의 눈으로 살펴야 했지요. 아이들과 서가맘은 딱 1km 지점에서 다시 돌아서 내려오고, 아빠와 이모부는 한참이나 더 걷고 돌아왔답니다. 아이들이 걷기에도 참 좋았던 곳이어서 아이들과 저는 치치에 머무는 동안 다시 한 번 들르게 될 것 같았어요.

↗집을 나서기 전에 미리 마리네이드해 두었던 고기를 꺼내서 훈연을 하며 천천히 익혔어요, 고기가 익는 동안 우리는 트래킹으로 쌓인 피로와 땀을 깨끗이 씻어내며 쉼을 가졌답니다. 한참을 기다린 뒤 먹는 고기맛이란 참으로 비할 것이 없지요,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게 잘 익은 고기는 그 빛깔이나 향만큼이나 맛이 아주 훌륭했답니다. 

↗비가 와서 금요일 하루는 집 근처에 있는 공군박물관에 다녀온 뒤 집에서 쉬었고, 드디어 토요일 아침에 밝았답니다. 주말 내내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었고 정말 치치에는 비가 내렸지만 남편의 짧은 휴가를 그냥 집에서 보낼 수는 없었지요, 그래서 계획대로 우리는 테카포호수와 푸카키호수, 마운트쿡을 다녀오기로 했답니다. 가는 길에 들른 Fairlie Bakehouse에서 우리는 파이로 아침 식사를 대신했답니다. 제부는 삼겹살애플소스파이(Porkbelly apple sauce pie)가 맛있다고 했지만 먹어보니 남편과 제게는 너무 난해한 맛이었어요, 아이들은 잘 먹었지만. 그래서 우린 그냥 입맛에 맞는 간소고기치즈(Mince&Cheese)를 시켜 맛있게 먹었답니다. 사실 이 곳은 베이컨연어파이(Bacon & Salmon pie)가 맛있는 집이라고 많이들 알려져 있긴 하던데 저는 익힌 연어를 좋아하지 않아서 말이지요. 

↗한참을 달려 도착한 테카포(Lake Tekapo)는 지난해 2월에 본 모습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답니다. 주변 경치야 계절에 따라 그럴 수 있겠다 싶었는데, 물이 이렇게 줄어들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지요. 바로 앞에까지 와 있던 물은 말라버린 호수 바닥을 한참이나 걸어 들어가야만 볼 수가 있었지요, 원래 이 계절엔 이런 걸까요? 물이 가득하고 루핀이 가득 핀 모습을 보러 남편과 다시 올 수 있기를 잠깐이나마 바랐답니다.

↗테카포를 뒤로 하고 우리가 들른 곳은 연어농장(Hihg Country Salmon)이었어요, 이 곳도 지난해에 왔을 때보다 더욱 규모가 커져 있었답니다. 푸카키 호수의 차가운 빙하수에서 자란 연어는 육질이 단단하고 지방이 적어 그 맛이 참 담백하고 좋기로 유명한지라 남편에게도 꼭 맛보여 주고 싶었거든요. 아이들과 함께 연어에게 먹이를 던져주며 잠깐 즐거운 시간을 보낸 뒤 다시 차를 탔답니다.

↗뉴질랜드에 오기 전 남편은 국제면허증을 발급받았다고 했어요, 그래서 이번 여행에서 잠깐 잠깐 제부와 번갈아가며 운전을 했답니다. 한국과는 운전대도, 주행도로도 반대편인지라 조금 헷갈릴 수도 있지만 남편은 제부가 알려주는 대로 잘 습득하며 별 무리없이 운전을 했답니다. 운전대를 잡은 게 자전거에 이어 두 번째로 기분좋은 일인 것 같았어요!

↗푸카키 호수를 보며 한참을 달렸더니 멀기만 하던 마운트쿡(Mount Cook)이 바로 눈 앞에 있는 듯 했어요, 구름이 가득한 흐린 날이었는데도 산 꼭대기가 어찌나 잘 보였는지 몰라요. 아이들과 함께 폴짝 폴짝 뛰어오르기도 하고 남편과 둘이서만 폴짝 뛰어오르기도 하며 사진을 찍었답니다. 누구보다 잘 뛰어오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쉽지 않았어요.

↗4개월된 우리 셋째를 안고 남편과 함께 후커밸리(Hooker Valley Track)를 걷기로 했어요, 물론 끝까지 말이지요.

↗품에 잠든 아기를 안고서 걷고 걷고 또 걸으며 마운트쿡을 향해 나아갔지요, 남편에게 추억이 될 사진들을 한 장 한 장 찍어주면서 말이지요! 저 포즈는 분명 아빠 사진에서도 봤었는데.. 남자들은 저 포즈를 다들 좋아하는가 봅니다. 

흐린 날이었지만 바람도 불지 않고, 춥지도 않고, 눈덮인 산봉우리가 선명하게 잘 보여서 어찌나 감사했는지 모른답니다. 기분좋은 트래킹을 모두 마친 뒤 함께 모여 저녁을 먹었어요. 해가 지니 낮과는 다르게 꽤 쌀쌀하더라고요, 산에서는 어둠이 빨리 온다는 말도 실감이 되는 순간이었어요. 그리고 어둠이 짙게 내리기도 전에 추위가 먼저 찾아왔답니다. 집에서 준비해 간 김밥과 함께 뜨끈한 라면을 먹으니 추위에 움츠려졌던 몸이 사르르 녹는 게 얼마나 좋던지요. 어른아이 할 것 없이 모두가 맛있게 잘 먹었답니다. 남편의 일정이 너무 빠듯해 당일치기로 여행을 간 우리들인지라 저녁만 먹고는 바로 출발, 환한 보름달빛을 바라보며 치치까지 또 열심히 달렸답니다. 집에 도착하니 새벽 1시, 참으로 고생했네요!

↗밤새 아주 아주 고요히 잘 자고 일어난 우리들은 주일 예배를 드린 뒤 한 가정에 초대를 받았답니다. 우리의 고민을 나누며 조언도 얻으며 귀한 것들을 나누는 즐거운 시간이었답니다. 감사합니다.

↗저녁에는 전날 여행에서 사 온 연어를 썰어 함께 나누었답니다. 지난 1년간 참 그리웠던 맛이었는데 남편과 함께 먹으니 더 맛있는 느낌이랄까, '맛있는 것을 보면 사랑하는 사람 생각이 난다.'는 말이 있듯이 제게는 남편이 그렇습니다. 늘 맛보여 주고 싶었는데 이렇게 함께 먹으니 참 좋습니다. 

↗함께 정글의 법칙을 보며 먹어보고 싶다고 했었던 크레이피시(Crayfish)였답니다. 아직 바닷물이 너무 차가워서 아무도 들어가서 크레이피시를 잡지 않아 살아있는 크레이피시를 만나기가 힘들다고 해서 너무 아쉬웠어요. 하필이면 Full Moon에 뉴질랜드로 와서 별도 못 봤는데 뉴질랜드 장어도, 흑전복도, 크레이피시도 먹지 못하고 돌아가려니 너무 아쉬운 것 같아서 아쉬운대로 냉동 크레이피시를 구했답니다. 생물에 비해 냄새도 꽤 꼬릿꼬릿하고 식감도 별로여서 저는 너무 속상했네요, 원래 이런 맛이 아닌데 싶어 말이지요.

↗아쉬운 게 너무도 많았지만 허락된 시간이 이 뿐이기에 밤비행기를 타고 남편은 먼저 한국으로 떠났답니다. 할말도 많았는데 남편 얼굴만 봐도 자꾸만 코끗이 찡해져서 제대로 대화를 나누지도 못했네요, 잠깐 여행을 와 있는 것 뿐인데도 헤어짐은 이렇게 마음이 허전하고 짠하네요. "조심히 가요, 잠 좀 푹 자고. 광저우 가서 커피 한 잔 해요." 이 말 밖에는 못 해 준 것 같습니다. 마중도, 배웅도 제대로 해 주지 못하고 그저 가방에 커피믹스 하나 넣어줬는데 다음날 아침에 남편이 광저우 도착해서 커피 한 잔 한다고 사진을 보내왔습니다. 챙겨주길 잘 했다 싶어 기분이 참 좋았답니다.

↗안전하게 잘 도착했다고 해서 한시름 놓고는 남편에게 고작 커피 사진이 다냐고 했더니 다시 보내온 사진이랍니다. 서가맘의 남편으로서는 아마 자기 마음을 가득 담은 최선의 사진이었을 겁니다. 경상도 남자, 참으로 그 답습니다. 여행에 대한 아쉬움과 미안함, 당장 또 출근해야 할 남편에 대한 걱정 등으로 마음이 답답했는데 남편이 보내준 사진 한 장으로 인해 기분이 참 좋아졌습니다. 아이들 낳고 지금껏 웃고 울며 같이 살면서 우리가 서로를 믿고 깊이 사랑하고 있다는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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