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한, 어떤 하루.
- 내가 살아가는 이 순간
- 2017. 9. 5. 01:14
요 며칠 여러 가지 일이 있었던지라 피곤했나봐요. 뻑뻑하다 못해 시린 눈을 비비며 일어나 밥솥에 밥을 안치고는 이 쪽 저 쪽 창문을 활짝 열어 환기도 시키고, 간밤에 아이들이 어질러둔 장난감이며 책을 정리하면서 하루를 시작했었지요. 저에게는 이른 아침이었는데 해는 벌써 저만치 떠올라 우리 동네를 비추고 있었답니다. 저는 매일 아침 일어나면 창문을 먼저 열어서 환기를 시키면서 하늘을 바라본답니다, 이것도 습관이랄까요^^;
↗그런데 요즘 하늘이 정말 아침 저녁으로 얼마나 아름다운지, 감동이랍니다. 어쩌면 저리도 아름다운지! 오늘도 이렇게 멋진 하늘을 바라보며, 산 아래까지 자욱하게 내려앉은 안개를 바라보며 행복한 아침맞이를 했답니다. 저에겐 이 짧은 찰나의 순간들이 소소한 기쁨이 된답니다. 왠일로 아이들이 저를 따라 깨지 않고 곤히 자고 있길래 잠깐 말씀을 보고 오늘도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실 것을, 지켜주실 것을 기도하며 지인들에게도 말씀을 보내주었어요.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 시편 121편 말씀, 아멘
아침은 엄마가 해 주신 나물들을 한데 넣고 슥슥 비벼 나물비빔밥을 해서 온 가족이 식탁에 둘러 앉아 함께 먹었지요. 모두가 바쁜 아침인지라 얼른 먹고 신랑은 회사로 출근을 하고, 우리 큰 아이는 어린이집으로 등원을 하고, 저는 우리 둘째와 함께 코스트코에 장을 보러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답니다. 10시에 만나서 함께 가기로 한 언니들이 있는지라 서둘러 설겆이를 끝내놓고 나왔지요. '청소는 다녀와서 해야지.' 하면서 말이예요.
↗규정 속도도 나름 지키고, 신호도 딱딱 지켜가며 딴에는 안전운전을 하며 열심히 목적지를 향해 달렸는데 목적지 코 앞에서 교통사고가 났습니다. 사건의 발단은 이랬답니다. 빨간 불이 초록불로 바뀌는 것을 확인하고 차를 달리기 시작했는데 커브길에서 갑자기 제 앞에서 달리던 차가 급정거를 하는 거예요. (도로에서 무슨 작업을 하는 것 같았는데 좀 멀리서부터 삼각대를 세우고 작업 알림을 하지 않았더라고요. 가뜩이나 커브길인데 위험하게 말이지요.) "어머나!" 저도 얼른 급정거를 하고 비상깜박이를 켰답니다. 그런데 비상깜박이 버튼에서 손 떼기 무섭게 "쾅!" 하는 거예요, 너무 놀라 소리를 질러 버렸네요. 그러고는 한숨을 "하~ 하~" 쉬었어요. 우리 딸도 충격에 놀랐는지 멍하게 저를 쳐다보면서 "엄마!" 합니다. 16개월인데 우리 딸.. 얼마나 놀랐을까요~ 살면서 처음 겪는 일에 아마도 '응? 이게 무슨 일이야?' 했을 겁니다. 그 때만 해도 괜찮은 줄 알았는데 문을 열고 내리려고 보니 손도 떨리고 다리에 힘도 풀리는 거 있지요. 어머, 정말 제가 놀라긴 놀랐나 봅니다. 그럼 애는 더 놀랐을텐데 어쩌나 싶기도 하고. 그러고 있는데 뒤에서 제 차를 박은 분이 놀라 달려오셨어요. "괜찮습니까? 제가 100% 잘못했는데, 미안합니다. 보험접수 해 놓겠습니다, 아기랑 아주머니랑 다 꼭 병원 가보십시오." 이런 이야기를 하셨어요. 그 와중에 저는 [아.주.머.니]라는 말이 참 귀에 거슬립니다. 틀린 얘기는 아닌 것 같은데 그냥 뭔가.. 저보다 나이가 훨씬 많아 보이는 분께 들으니 기분이 이상하다고나 할까요. 여튼, 그렇게 사고는 났답니다. 차를 빼서 이야기를 할까 하다가 다시 내려서 사고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답니다. 제 차랑 뒷 차를 함께도 찍고, 뒷 차만도 찍고, 제 차만도 찍고. 이렇게 보기에는 뒷 차만 찌그러진 느낌이네요, 제 차는 마후라가 아예 밀려들어가고 없는데 참 멀쩡해 보이고 말이지요^^; 일단 보험처리를 하기로 하고는 연락처를 받아둔 후 인사를 하고는 제 갈 길을 재촉했답니다.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는지라 너무 신경쓰이더라구요. 목적지에 도착해서 신랑에게 전화를 걸어 사고 얘길 했더니 블랙박스 영상을 백업하자고 해서 먼저 블랙박스 영상부터 체크했답니다. 지난 번에 블랙박스 영상을 체크하다보니 얼마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영상이 순차적으로 삭제되는 것 같더라구요. 하루 이틀 정도만에 지워지진 않겠지만 그래도 혹시 무슨 일이 있을지 몰라 먼저 블랙박스 영상부터 확보를 해 두었답니다. 그러고 있는데 마침 대인대물 보험접수가 됐다고 문자가 왔어요. 연이어 사고 낸 차주에게서 전화도 걸려 왔었답니다. 괜찮으시냐, 아기가 많이 놀랐을텐데 어떻게 하느냐, 교통사고는 시간이 지나야 나타나니 지금 괜찮더라도 꼭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아봐라 등의 이야기를 하셨어요. 이미 사고는 난 거고 차주가 이렇게 미안한 마음을 전해 오니 그래도 고맙고 마음이 편안했네요. 요즘은 사고 내고도 큰소리 치는 사람이 너무 많은 세상인지라.
몇 가지 일을 처리해두고는 언니들을 만나 함께 코스트코엘 다녀왔어요, 제가 갑자기 사고가 나는 바람에 한 시간이나 지연되었는데도 언니들은 모두 제 걱정이 먼저네요. 괜찮은지, 다친덴 없는지 물어봐주고 사고났을 때 병원가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며 경험담을 이야기 해주던 언니들의 그 마음에 또 얼마나 마음이 따뜻하고 좋았는지 모른답니다. 병원을 갈까, 한의원을 갈까 고민하다가 결국 내일 한의원에 가서 침을 좀 맞기로 했지요. 바로 한의원에 갈까 하다가 교통사고는 시간이 지나봐야 안다, 잠을 자고 일어나면 또 다르다고들 해서 하루 미뤘답니다. 아이를 데리고 혼자 가면 진료를 받을 수도 없는데다 우리 딸도 사고의 주인공인지라 함께 진료를 봐야 하기에 내일 같이 가자면서 한 언니가 자기의 오전 시간을 제게 내어주었답니다. 오후에 선약이 있어 바쁠텐데도 선뜻 소중한 시간을 내어줘서 얼마나 감사한지요.
↗아침부터 일은 많았으나 저는 코스트코에 다녀왔답니다. 신랑이 갑자기 북어국 먹고 싶다고 해서 집어든 황태포, 멸치볶음에 넣을 슬라이스 아몬드, 밥 지을 때 넣을 햄프씨드랑 찰수수쌀, 야채 안 먹겠다 고집부리는 우리 아이들에게 거짓말같이 야채를 잘 먹게 해주는 카레 다섯 봉지, 우리 아들이 약국 갈 때마다 먹고 싶다며 입을 삐죽이던 아이키커, 우리 아들 고집 피울 때 하나씩 꺼내들 하리보 곰젤리. 이게 다네요~ 꺼내놓고 보니 사 온 것은 딱히 별 게 없어요. 그냥 언니들과 함께 그 시간을 보내고 싶었던 건데 오늘은 참 고맙고 미안하고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사고가 나고 보니 곁에 있는 그 사람들이 얼마나 소중한 사람들인지, 얼마나 나를 아껴주고 있는지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끼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사고가 나서 여러모로 귀찮은 일이 생기고 몸이 아프긴 해도 마음은 참 푸근하고 좋은 것 같습니다. 세게 [쾅!] 박았는데도 크게 다치지 않은 것이 감사하고, 우리 딸이 경기하지 않고 지금 이 밤에 잘 자고 있음에 감사하고, 사고 낸 차주가 안하무인하지 않고 걱정해주는 분임에 감사하고, 나를 걱정해주는 사람들이 있음에 감사하고, 팔이 아프다는 말에 야근하고 돌아와서도 팔을 주물러주는 남편이 있어 감사한 밤. 오늘은 그런 하루였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한" 저의 어떤 하루였답니다. 자고 나면 한의원가는 날인데, 내일은 또 어떤 하늘이 저를 찾아올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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