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가네텃밭

땡볕에 김매고, 첫 수확까지!

서가맘 2018. 5. 18. 01:54

남편이 연차를 쓰고 데이트를 하자고 했던 날, 햇살은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고 바람은 구름까지 데리고 어디론가 여행이라도 가버린 듯 조용했답니다. 우리 부부의 데이트 장소는 바로 텃밭, 이렇게 더울 줄 알았으면 조금 더 일찍 올 걸 싶었지만 사실 그럴 수도 없는 현실이지요.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등원하는 시간은 정해져 있으니 말입니다. 흐흣, 어쨌든 평소와 같이 건강한 모습으로 씩씩하게 어린이집으로 등원을 해 준 것만으로 감사한 일이지요.

  ↗은혜로다~ 첫 수확! 

↗아이들을 보내놓고 텃밭으로 와 보니 아, 여긴 들어가는 길부터가 이미 잡초들에게 점령당하고 말았네요. 제 허리춤을 훌쩍 넘을만큼 자란 잡초들을 바라보며 들어가지도 못하고 서성이고 있었답니다. "나를 따르라~!" 하며 성큼성큼 풀들을 가로지르는 신랑을 보면서도 혹여 뱀이라도 나올까 무서운 마음에 괜히 심장이 쿵쿵 뛰었답니다. 풀숲을 지나면서 지레 겁을 먹은 저는 저 곳을 지나는 그 짧은 순간 '저를 지켜주세요, 하나님.' 하고 기도를 드렸답니다. 은근 겁이 많은 곧 마흔 서가맘입니다.

↗풀숲을 가로질러 밭으로 올라와 보니 이 곳도 이미 풀밭이 따로 없습니다. 한동안 잦았던 비에 온 땅이 기운을 얻어 이렇게도 많은 풀들을 살뜰히 키웠나 봅니다. 어디에 뭐가 있는지 제대로 보이지도 않을만큼 풀이 무성히 올라왔던 걸요. 여기를 둘러봐도 초록빛, 저기를 둘러봐도 초록빛이었던지라 눈 건강엔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을 것 같았답니다.

↗얼마 전에 와서 봄에 처음 올라온 부추를 베어가면서 부추 밭을 깨끗이 정리하고 갔었는데 다시 찾은 부추밭은 완전 배신감을 안겨주었답니다. 그러면서도 그만큼 자주 찾질 못했던 게으른 농부를 만나 잡초밭에서 자라고 있던 부추를 보니 주객전도가 이런 거구나 싶기도 하고, 옛부터 농작물은 농부의 발걸음 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도 떠올라 홀로 반성의 시간을 가졌었네요. 잦았던 비와 늦은 봄 햇살과 시원한 바람, 이 모든 게 어우러지면서 부추도 풀들도 이렇게나 많이 자란 것을 보며 생명이라는 것이 참 놀랍고 신기하다는 생각을 했답니다. 이런 저런 생각도 잠시, 얼른 잡초밭을 부추밭으로 되돌려 놓아야겠다 싶어 열심히 풀을 뽑고 김을 맸답니다. 

↗쪼그려 앉아 김매기는 정말 너무도 힘든 일, 아예 잡초밭이면 다 뽑아내고 갈아버리면 될텐데 부추는 살리고 잡초는 뿌리까지 뽑아내려니 보통 일이 아니더라고요. 잡초가 조금 더 컸다면 또 지금보다 수월했을텐데 부추보다는 작으면서 부추 사이사이에 뿌리를 내리고 있으니 하나 하나 뽑아내면서 내가 지금 뭐하고 있나 싶기도 했었지요. 부추랑 풀이랑 다같이 칼로 베어내서 다듬는 게 낫겠다 싶긴 했는데 그렇게 하면 남겨진 뿌리에서 풀이 또 올라올 듯 하여 힘들어도 돌아가는 게 낫겠다 싶어 계속 뿌리째 풀을 뽑았답니다.  

↗오래도록 쪼그려 앉은 채 잡초들을 뽑아내고 나니 드디어 보이는 부추밭, 밭이 넓지 않아서 감사할 일도 있네요. 부추밭 옆에서 친구해주는 도라지 몇 포기가 얼마나 예쁜지, 잘 자라나서 꼭 약도라지가 되어 주길 바라봅니다. 정말 어찌나 볕이 뜨거웠는지.. 그나마 감나무 그늘이 조금 있어 무사한 제 등짝입니다. 바람타고 소풍간 구름은 어디까지 가 버린 걸까요. 다가올 여름, 작열하는 이 햇볕 아래 긴긴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 벌써부터 걱정입니다.  

↗오늘도 밭 매다 만난 길쭉한 이 녀석, 전 지렁이가 너무 너무 징그럽네요. 만날 때마다 어찌나 놀라게 되는지 놀란 가슴이 진정되는데 참 오래도 걸렸답니다. 지렁이가 많은 땅은 비옥하다는데, 지렁이가 너무 많으니 저로서는 참 힘겹습니다. 아이들에게 건강한 과일이랑 채소를 먹이고 싶은 마음에 약 한 번 안 쳐서 그런지 지렁이도 많고, 굼벵이도 많고, 온갖 벌레들을 다 보는 것 같네요. 제겐 놀랄 일은 너무도 많은 텃밭인데, 우리 아이들에겐 현장 학습장같은 그런 곳입니다. 

↗깨끗해진 부추밭을 보며 흐뭇해하다가 준비해 온 칼을 꺼내 부추를 싹 다 베었답니다. 흙만 잘 씻어내면 따로 손질할 것 하나 없는 부추인지라 너무 너무 기분이 좋았지요. 두 번째로 벤 봄부추인데 코끗에 풍겨오는 싱그러운 부추향이 어찌나 짙고 좋았는지..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 가득 향기가 차올라 남편과 계속 코를 킁킁대며 "부추향이 너무 좋다, 정말 좋다." 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답니다. 저녁에 부추랑 오이로 겉절이 만들어 수육에 곁들여 먹기로 약속까지 했지요.

↗제가 부추밭에 쪼그려 앉아 김을 매는 동안 남편은 예초기를 돌리며 무성하게 자라난 풀들을 베어냈답니다. 처음 얼마동안은 뽑아내더니 도저히 안되겠다 싶었는지 "왜에엥~"하고 요란한 소리를 내며 예초기를 돌리기 시작하더라고요. 아마 남아있는 뿌리에서 얼마 안 있어 다시 새순이 돋고 또 다시 무성해질테지만 그 전에 다시 와서 다시 예초기를 돌릴 예정이라고 하더군요. 뭐, 이 곳엔 올해엔 부추와 울릉도취나물, 도라지, 돼지감자(뚱딴지) 외에 다른 건 아무것도 심지 않을테니 그 정도만으로도 괜찮을 것 같았어요. 풀을 베어내고 나니 그래도 좀 정리가 되었죠?

↗뱀 나올까 무서웠던 풀밭도 풀을 베어내고 나니 이젠 더이상 무섭지 않습니다. 땡볕에 예초기 돌리느라 수고한 우리 신랑, 당신은 정말 멋집니다. 헤헷!

 

 

↗어마무시했떤 풀들을 다 정리하고는 자리를 옮겨 지난 번 일궈두었던 텃밭을 찾았습니다. 양이 많진 않았지만 잦았던 비가 작물들에게 득이 된건지, 실이 된건지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고구마는 줄기가 물러버린 것들도 몇 뿌리 있었고 가시오이는 누렇게 뜨다가 말라버리긴 했지만, 대부분의 고구마와 함께 들깨도, 토마토도, 고추도, 딸기도 모두 모두 뿌리를 잘 내렸는지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답니다. 지난 번에 심어두고 사진 찍지 못했던 보랏빛 가지도 이렇게나 잘 자라고 있었답니다.  

↗우리 아이들이 어린이집에서 식목일에 씨를 뿌려 싹을 틔워 온 단호박도 텃밭으로 옮겨 심었답니다. 우유팩에서 싹을 틔워 이렇게 잎이 나기까지 매일 작은 손으로 물 주고, 작은 입술로 축복의 말을 한마디씩 들려주었을 우리 아이들을 생각하니 괜히 더 소중한 느낌이 들었지요. 뉴질랜드 단호박을 사다가 쪄 먹고는 씨앗을 말려두었다가 심었는데 그게 이렇게 싹이 나다니, 놀라운 일입니다. 잘 자라서 꼭 맛있는 단호박이 열리길 기도하게 되네요, 우유팩에서 곱게 싹 틔운 단호박을 여섯 포기쯤 옮겨심었는데 정말 기대가 됩니다.

↗지난 번 심었던 토마토는 벌써 꽃을 피웠답니다. 아직 키가 작고 어린 토마토이지만 쑥쑥 자라날 것을 생각해 미리 지주대를 세워주었지요. 그러면서 토마토 본 줄기와 잎 사이에서 쏘옥 나오는 곁순은 모두 똑똑 따 주었답니다. '아니, 가지가 많아야 더 많이 맺는 거 아냐?' 라고 생각이 되기도 해서 당장은 저 건강한 순을 따는 게 아깝기도 하고, 또 토마토 입장에선 아프기도 하겠지만, 곁순을 따 주어야만 본 줄기와 잎도 쑥쑥 자라고 좋은 열매를 맺게 되거든요. 우리도 아마 똑같겠죠? 더 성장하기 위해, 더 좋은 나를 위해 포기할 것은 힘들어도 미련없이 포기하는 거. 토마토 한 포기에서 또 이렇게 깨달음을 얻습니다. 한 포기 한 포기 모두 건강하게 잘 자라서 올 여름 우리 아이들 간식을 책임져 주길!  

↗지주를 세우고는 집게로 잘 고정해주었네요.

↗열매가 달려있는 딸기모종을 가져다 심었더니 벌써 빨갛게 익었습니다. 온통 푸른 빛이 가득한 텃밭에서 보는 새빨간 딸기라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눈으로 먹는 딸기, 톡 타서 보고 있자니 세상에~ 이렇게 예쁜 딸기는 또 처음이네요. 고슴도치 눈엔 제 자식인 고슴도치가 제일 예쁘다더니 하고 많은 예쁜 딸기 다 제쳐두고 제 눈엔 이 딸기가 제일 예뻐 보입니다. 이 딸기 한 알은 누구 입으로 쏙 들어갔을까요? 

↗콩 한쪽도 나눠먹는다는 옛말이 있잖아요, 그래서 작은 딸기 하나를 반으로 잘라서 우리 아이들 입 속으로 하나씩 넣어주었답니다. 무슨 맛이냐고 물었더니 큰 아이가 "음... 딸기맛!" 이럽니다. 그래서 그건 엄마도 안다고 딸기가 어떤 맛이냐고 다시 물었더니 "음....... 씨앗맛!" 이럽니다. 대체 씨앗맛은 무슨 맛인지 궁금해집니다. 세쪽으로 나눌 걸 그랬나, 다음 번 딸기는 꼭 제가 먹어야겠습니다!

낮에 했던 약속, 오전에 밭에서 베어 온 부추에다 오이를 넣어 겉절이를 만들어서 수육과 함께 먹었답니다. 엄마가 만들어 준 겉절이 맛을 완벽하게 재현하지 못한 것이 아쉽긴 했지만, 제 입엔 이렇게 맛있을 수가 없네요. 오전 내내 부추밭에서 햇볕받으면서 열심히 김을 맨 효과가 더해진 것이겠죠? 뜨거웠던 저의 하루는 이렇게 또 알차게 지나갔답니다.